나의 해방일지(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오랜만에 삘 충만한 드라마를 보았다.
나의 해방일지
첫 화를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무언가 알코올 냄새가 가득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충만하다.
나의 아저씨와 너무도 감수성이 비슷한...
역시나 나의 아저씨의 작가인 박해영 씨의 작품이었다.

삼 형제의 이야기, 그리고 그 형제에 다가온 미지의 주인공...
퍽퍽하고 고된 일상... 그리고 숙취...
스토리는 다르지만, 프레임은 동일하다.
무엇보다 박해영 씨의 작품은 대사가 좋다.
현실적이진 않지만, 마음껏 뽕필 충만한...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소심하고 평범한 주인공 염미정은 구씨를 만나고 각성한다.
정말 뽕을 맞지 않고서는 뱉을 수 없는 말...
이 대사 하나로 이 드라마는 설명이 된다. 정상적이지 않아...
하지만 멋있어.
단순히 예쁘거나 현란한 말이 아닌,
직설적이면서 임팩트가 강해.
살면서 나도 저런 말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사랑해줘요라는 말은 부족해. 한참 부족해.
어디에 갇힌 건진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어요.
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 이게 인생이지', '이게 사는 거지' 그런 말을 해보고 싶어요.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지만, SNS에 글을 올리며 행복은 이런 거다 떠벌이지만,
진짜로 행복한 걸까...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생각보다 추앙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하지 못한다.
자신을 버리고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도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심으로...
명대사를 남발하는 작가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판타지나 SF 영화를 보고선 현실적이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생각해도 현실적인 대사는 아니다.
뽕 삘 충만한...
그래서 난 좋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아서...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일상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평범하다.
저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서 판타지 틱한 말들이 나오는 것이 좋다.
우리도 말로 꺼내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가끔씩 명대사를 날리는 적이 있지 않은가?
걔가 경기도를 보고 뭐랬는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 지를 몰라.
내가 1호선을 타는지, 4호선을 타는지.
어차피 자기는 경기도 안 살 건데 뭐 하러 관심갖냐고 해.
하고많은 동네 중에 왜 계란 흰자에 태어나갖고...
난 노른자에서 태어났다면? 달랐을까?
나를 사랑하는 이유 천가지에도 써클렌즈가 들어가고,
정아름을 미워하는 이유 천가지에도 써클렌즈가 들어가.이유같은게 어딨냐, 그냥..
좋아하기로 작정하고..미워하기로 작정한거지.
가끔 본능을 잊어버리고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내가 왜 그 사람을 미워하는지...
보통 좋아하기로, 미워하기로 작정하고 이유를 만드는 데 말이다.
항상 이런 식이었어.
내가 뭐 빚졌나?
왜 자꾸 빚진 기분이 들지?
나만 드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사에 나올 줄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자꾸 무언가를 제공해야만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랑하는 이유로 무엇이든 주고 싶은 것과, 남자라서 무엇이든 주어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끝.
대사 하나하나 이렇게 곱씹으면서 보기는 처음이다.
전부 정리하면 책 한 권 쓸 수 있겠다.
다음 작품도 기다려진다.